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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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델(Bethell)선생 경모대회, 서길수 교수의 외침!"저는 5년간 정리한 끝에 2022년 ‘동북공정 백서’를, 2023년 ‘중화인민공화국 국사가 된 (고)조선·부여·고구리·발해’라는 책 2권을 펴냈고, 2년간 3·1절마다 민족사를 훔쳐 간 패권주의를 규탄하였습니다.” 서길수 이사장의 호소였다. 이 결과는 2021년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한 달간 고구리·고리연구소와 열심히 힘을 합해 제작한 프로가 방영되지 못하였다. 2022년 조선TV 보도본부 ‘탐사보도 세븐’도 동북공정백서 학술대회 현장을 찍고 발표자 인터뷰를 하는 등 열심히 제작하였으나 방영되지 못하였다. 2022년 3월 18일 취재해 간 한국경제신문 ‘여론독자부’ 기사도 빛을 보지 못하였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이에 대해 배설(Bethell)선생 경모 115주기를 맞아 서길수 이사장의 통한의 외침이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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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동북공정 대응 실패”, 공개 항의 대회고구리·고리연구소(이사장 서실수)는 동북아역사재단 박지향 이사장의 공개토론 제안이 무산되자 동북공정 실패에 대해 전면 비판에 나섰다. 23년 1차 한중학술회의 관련 자료 요청에 대한 거부에 대한 반작용이다. 4월 24일 국회의원회관 2층 로비에서 2시 반부터 4시까지 토론회 형식으로 진행된다. 더불어 3일에 걸처 로비엣 간도자료가 전시된다. 자세한 사항 문의 010-5126-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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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문경새재오픈세트장' 건립 비화(祕話)이만유/전 문경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문경새재오픈세트장’은 당초 ‘한국방송공사’가 고려시대물을 촬영하기 위하여 사극 전용 촬영장으로2000년 2월 23일 문경새재 제1관문 주흘관 뒤 용사골에 건립한 것이다. 당시‘KBS 문경촬영장’ ‘문경새재촬영장’ ‘태조왕건촬영장’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이 촬영장은 문경시가 부지 65,755㎡와 왕건교를 설치하는 비용 등 4억 원을 제공하고 KBS가 공사비 28억 원을 투입하여 총사업비 32억 원으로 왕궁 2동, 망루 2동, 기와집 42동, 초가 40동, 기타 13동을 건립한 국내 최대규모의 사극 촬영장이 조성되었다. 이로써 문경시는 21세기 새천년 웅비의 나래를 펼쳤다. 용사골은 조선 시대 군부대 격인 조령진(鳥嶺鎭)이 있었던 곳이며 지방 산성을 수비(守備)하는 수장인 별장의 품계가 9품 내지 7품 무관을 배치하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문경관문과 조령산성은 왜군으로부터 한양을 지키기 위한 군사 요충지였음으로 그 중요성을 감안하여 숙종 때 설치한 것으로 보며 영조 때는 무관 4품을 배치했던 곳이었다. 당시 KBS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대규모 촬영장을 짓기 위해 물색을 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너도나도 관심을 가지고 TF를 구성하며 유치경쟁에 돌입했다.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거나 정권 실세를 동원하는 파워 게임도 있었고 자기 출신 지역에 유치하여 치적으로 삼으려는 유명 인사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문경, 안동, 부안, 제천 등이 치열한 경합을 치른 후 문경으로 최종 낙점되어 문경새재 용사골에 촬영장을 짓게 된 것이다. 조선 시대 영남대로의 중심지이며 국방을 수호하던 유서 깊은 군사 요충지 문경새재에 사극 촬영장이 들어서는 것도 의미 있지만, 용사골(용상골) 이름 그대로 용이 승천하듯이 왕(용)이 사는 왕궁이 세워지는 것은 풍수지리 및 역사적 인연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촬영장 조성 후 첫 기획물인 대하사극으로 고려를 건국한 왕건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태조 왕건’에 등장하는 주인공 중에 후삼국의 세 영웅으로 궁예, 왕건, 견훤이 있는데 그중에 후백제 왕 견훤이 문경 가은 출신이라 필자가 문화관광해설사 활동 시 촬영장에서 해설할 때 우스갯소리로 ‘석탄산업으로 한때 잘 나가던 문경이 폐광 이후 살아 길길이 막막해졌는데 하늘나라에서 견훤 할배가 고향 후손들을 불쌍히 여겨 촬영장을 세울 수 있게 도와주셔서 지금 관광객이 구름처럼 문경으로 모여 와 굴뚝 없는 관광산업으로 잘살게 되었다’라고 하기도 했었다. 실재적으로 촬영장이 문경새재 용사골에 유치된 이유는 사극 전용 촬영장으로 제 조건이 유리하고 적합한 곳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요인은촬영장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조령산 산세, 특히 촬영장 뒤편 장군봉이라 부르는 봉우리가 서기가 서려 있어 신비롭기까지 하며 고려 왕궁 만월대가 있는 고려의 수도인 개경(현 개성)의 송악산과 닮았다는 것은 물론이고 사극 촬영에 장애가 되는 포장된 길이 아닌 600년 된 옛길 문경새재 황토 비포장길이 있어 사극 촬영지로 더 이상 경쟁상대가 있을 수 없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필자가 해설했을 때 ‘개성에 가지 않고도 개성의 송악산과 만월대 궁궐을 볼 수 있으니 여러분은 오늘 문경에 옴으로서 개성 여행 경비 수십만 원을 버는 횡재(橫財)를 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하였다. 거기에 더해서 사극 드라마는 편당 제작비가 많이 드는데문경새재에는 이를 절감할 수 있는 기존의 산성과 관문 등 문화유적이 있어 추가 세트가 필요 없고 현대물인 전주(電柱), 콘크리트 건물 등이 없어 촬영 기사가 카메라를 360도 막 회전해서 촬영해도 아무 장애물이 없다는 것이다. 또항공노선이 아니고 인근 군부대 군사 비행 구역도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 소음과 차 운행 통제로 차량 소음이 없어 동시녹음이 가능하다는 장점 등으로 환경적, 경제적 유리성이 크다는 이점이 있다. 뒷이야기이지만, 촬영장 설계를 할 때 부지 안에서 풍수지리상 드라마 성공을 위하여서는 왕궁터를 잘 잡아야 한다고들 하는데 어느 곳에 둘까 고심하다가 유명 지관(地官)에게 의뢰하여 지금 왕궁이 있는 곳으로 정하였다고 하였다. 그 풍수 값으로 3,000만 원이 들어갔다고하며 초가지붕 관리를 위해 이엉을 가는데도 연 6,000만 원이 비용이 소요된다고 하였다. 촬영장 건립의 경제적 효과로는, ‘태조 왕건’ 드라마가 시작할 때 150부작으로 기획되었지만, 시청률이 60.2%로 높았고 ‘사극의 신기원을 열었다.’ ‘드라마 사상 전무후무의 최고의 흥행작’이라는 호평을 받게 되어 200부작으로 늘여 방영하였다. 이에 따라 영상의 힘, 매스컴의 힘이 얼마나 큰지 이 드라마가 방영되자 문경에 연간 관광객 수가 50만 명 정도에서 방송을 시작한 그해 100만 명이 되고 해마다 100만 명씩 늘어 500만 명 체제로 유지하다가 얼마 뒤 경이적인 600만 시대를 열었다. 이로써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문경이 새롭게 발전하고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지 1위’의 위상을 가진 국내 관광의 중심이 된 것은 촬영장 유치가 큰 분기점이 됐다. 당시 유명 경제전문가가 이 촬영장으로 인한 간접 경제 유발효과가 연 500억 원에 이르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촬영장이 6,000억 원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했다. 당시 KBS가 ‘태조 왕건’ 드라마를 기획한 의도는 자주통일 의식 고취 및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이 드라마를 통화여 합리화하고 대국민 메시지를 보내려 한다는 설도 있었다. 그 당시 이를 접한 필자는 관광객들에게 이렇게 해설했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외세 즉 당나라의 힘을 빌려 통일한 것이라 진정한 자주통일이 아니고 어떻게든 당나라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통일인 데 반하여 태조 왕건은 스스로 힘으로 후삼국 통일을 이룩한 것이다. 다시 말해 완전한 자주통일을 이룩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지상목표가 남북통일인데 이 통일 역시 태조 왕건처럼 자주통일이 되어야 한다며 우리 국민 모두 한마음으로 뭉쳐서 더 훌륭한 자유민주국가를 만들고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튼튼하고 힘 있는 국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었다. 이렇듯 우리가 재미나 흥미로 보는 드라마 하나에도 국가이념이나 통치자의 철학이 반영되고 대국민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문경 가은읍 석탄박물관 옆에 있는 ‘가은오픈세트장(연개소문촬영장)’에서 촬영되어 2006년 7월부터 1년간 100부작으로 방영된 SBS의 대하사극 ‘연개소문’ 역시 중국의 문화침략, 다시 말해 고조선, 고구려, 발해 역사를 왜곡하고 만약 북한이 붕괴한다면 한수(漢水) 이북을 자기들 영토로 편입하기 위한 기도로서 ‘동북공정’을 본격적으로 추진될 때 방영되어 그 실상을 알리고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이 작은 나라, 적은 군사로 대국인 수나라, 당나라와 싸워 이긴 위대한 역사를 교훈 삼아 우리 국민이 분발, 정신 무장하여 동북공정에 대비하자는 의도가 깔린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문경시와 KBS가 촬영장 건립 시 계약으로 10년 뒤인 2009년 문경시로 촬영장 시설 모두를 이관한다고 하였고 문경시는 이를 받아 고려촌으로 재개발 활용한다고 하였으나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2008년 아쉽게도 국내 유일한 고려 시대 촬영장인 궁궐 만월대(滿月臺) 세트장을 허물고 많은 예산을 투입 조선 궁궐 경복궁(景福宮)을 세웠다. 일설에는 KBS에서 ‘태조 왕건’, ‘제국의 아침’, ‘무인시대’ 등을 이어 고려 사극을 계속 제작 방영하려고 했는데 정권이 바뀌고 새 대통령이 "나는 존경하는 역사 인물이 이순신이다.”라고 하여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전환하여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제작 방영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쨌든 미국 할리우드 유니버설스튜디오에 버금가는 세계 4대 촬영장 규모의 하나로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촬영지로 지방차지사에 남을 기념물이 되고 현대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 촬영장이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현재의 ‘문경새재오픈세트장’은 KBS가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촬영을 위해 세운 세트장을 허물고 문경시가 공사비 75억 원을 투입하여 70,000㎡ 부지에 광화문, 경복궁, 동궁, 서운관, 궐내 각사, 양반집 등 103동을 건립하여 새로운 조선 시대 모습으로 2008년 4월 16일 준공한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기존에 있던 초가집 22동과 기와집 5동을 합하여 130동의 세트 건물이 존재하고 있다. 문경에는 현재 고구려 신라 시대물 촬영 오픈세트장 1곳, 조선 시대물 촬영 오픈세트장 2곳이 있다. 2008년 그때 일부 뜻있는 시민들이 고려 시대물을 촬영할 수 있는 만월대 궁궐을 허물지 말고 보수 유지하여 그대로 두고 조선 시대 궁궐 세트장이 필요하다면 다른 곳에 건립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그랬다면 우리나라에서 모든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를 다 갖춘 더 완벽한 국내 유일 촬영장 메카로 부상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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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쪽 '동북공정 백서', e-북은 무료, 책은 정가 100원!책 표지와 판권만 읽어도 뭉쿨함을 주는 책이다. 그래서 놀라운 책이고, 특별한 책이다. 표지와 판권을 살펴보기로 하자. 표지에는 표제, 함께 쓴 이들, 발행주체, 발간년도가 들어있다. 표제는 ‘한중수교 30년, 역사침탈 20년 동북공정 백서’이다. 그리고 부제로 ‘역사침탈(동북공정) 대응 총서①’이라고 했다. 이 표제에 밝힌 거듭되는 메시지에서 이 책을 오직 사명감으로 발간하게 되었음을 제시하고 있다. 모두 20, 30년이라는 꺽는 해가 겹치는 때를 그냥 넘길 수 없다는 벼른 마음도 읽힌다. 한마디로 동북공정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이를 대하는 우리 스스로의 자세를 통탄한 것이다. 이 책을 함께 쓴 이들은 서길수 우실하 박승범 박찬규 한규철 박선영 6인이다. 서길수 이사장은 그 유명한 ‘고구려연구회’ 창립자이다. 현재 ‘고구리 고리연구소’ 이사장이다. ‘고구려 본디 이름 고구리(高句麗)’ 외 20여종의 연구서와 1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우실하교수는 한국항공대 교수로, 중국 요녕대학 교수와 중국 적봉대학 방문교수를 엮임했다. ‘고조선 문명의 기원과 요하문명’와 10여 종의 저술과 50여편의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박승범 연구원은 ‘고구리 고리 연구소’ 연구원으로 ‘중화인민공화국 학계의 고구려 유민 연구 검토’를 발표했다. 한규철 교수는 17대 국사편찬위원으로 ‘발해의 대외관계’를 저술했다. 박선영교수는 국사편찬위원회 교과용 도서 검정위원으로 ‘글로컬 만주’ 등을 저술했다. 모두 표제를 충족시키는 전공자들이 함께 했음을 알려 준다. 발행 주체는 ‘고구리·고리연구소(高句麗 高麗硏究所)’다. 그 간의 국정교과서만의 학습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은 용어다. 이 연구소는 속표지의 설명에 따르면 1994년 설립되어 1995년 고구리연구회로 법인화한 단체다. 2008년 발해학회와 합쳐 고구려발해학회가 되었고, 1994년 설립 정신을 이어받아 활동하는 민간학술단체다. 고구리(高句麗, BC37~AD412). 고리(高麗, 413~668) 역사를 비롯하여 그 바탕인. (고)조선과 부여, 그리고 고구리·고리를 이은 발해의 역사를 연구 보급하고 있다 28년의 역사를 이어온 학술 연구단체이다. *만일 아직 ‘고구리’라고 해야 하는 이유를 아직 모른다면 ‘유튜부 서길수 동북공정’을 보시면 알게 됩니다. 발간 년도는 판권에서 "1판 1쇄 펴낸날: 2022년 3월 1일”로 밝혔다. 뜻 깊은 날에 ‘우리역사 되찾기 3.1선언식’을 개최하기 위해서였다. 역사 독립선언을 한 것이다. 판권란을 보기로 하자. 먼저 가격이다. 단돈 100원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이렇게 부연했다. "책값 100원은 고구리·고리연구소에서 부담 합니다”로 하였다. 여기다 ‘e-book’은 아예 무료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렇게 제공하는 이유를 짐작케 하는 문구가 있다. "이 책의 저작권은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일부 또는 전부를 옮겨 쓸 수 있습니다. 출처를 밝혀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e-book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널리 나누어 주세요. 중공의 역사침탈을 모두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염가 봉사도 아니고, 친절도 아니다. 우리에 대한 호소이다. "부디 이 책을 읽고 역사광복에 함께 나서주세요”라고 한 것이다. 주먹이 불끈 쥐어지지 않는가! 표지와 판권만으로도 이렇게 호소력 깊은 책이 또 있었던가? 소중한 책 '동북공정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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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찾기 의병이 되자!” 서길수 교수의 외침고구리ㆍ고리연구소는 2월 28일 '동북공정 백서' 발표대회와 3월 1일 우리역사 되찾기 3.1선언식을 개최한다. 다음 첨부 자료를 참고하여 참가신청과 e-북 받기를 하길 바란다. 훔쳐 간 역사를 되찾을 대통령을 찾습니다. 고구리ㆍ고리연구소는 ‘동북공정 백서’를 발표하면서 각 정당 대통령 후보에게 문화ㆍ역사ㆍ외교정치에 대해 다음 같은 10가지 질문서를 보냈다. <질문 1> 한국의 반중ㆍ혐중은 동북공정으로 비롯되었다? <질문 2> 동북공정은 어떤 프로젝트인가? <질문 3> 동북공정의 주체는 누구였는가? <질문 4> 동북공정은 어떻게 되었는가? <질문 5> 중화인민공화국이 우리 역사 3260년을 침탈했다는 것을 알았는가? <질문 6> 우리 역사 1272년이 중화인민공화국 번속국이라고 한 것을 알았는가? <질문 7> 대통령이 되면 역사침탈(동북공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질문 8> 대통령이 되면 동북공정를 미중 관계 외교카드로 활용할 것인가? <질문 9> 대통령이 되면 동북공정 대응에 실패한 동북아역사재단은 어떻게 할 것인가? 몇 명이나 대답할 지 모르지만, 답하는 후보가 전혀 없어도 그것이 후보자들의 문화와 역사, 외교와 정치에 대한 의식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그대로 발표할 예정이다. 반중ㆍ혐중(嫌中)은 동북공정에서 시작되었다. 한중수교 30년, 올림픽 개막식 한복 문제로 온통 나라가 시끄럽다. 여당 대선 후보는 ‘문화공정’을 규탄하고 야당 대선 후보는 고구리ㆍ발해ㆍ동북공정을 들먹인다. 우리는 왜 중화인민공화국의 발전을 반기지 않고, 중화인민공화국을 반대하고(反中) 싫어하는가(嫌中, Sinophobia)? 그 원인을 알아야 바로 잡을 수 있고, 바로 잡아야 두 나라는 진정으로 평화로울 수 있다. 이러한 반중ㆍ혐중의 발생ㆍ진행ㆍ현상을 학술적으로 밝혀 두 나라 국민에게 보고하는 것이 이번 출판한 '동북공정 백서'이다. 1992년 한중수교 뒤 한국에는 반중이나 혐중이 없었으나 10년이 지난 2003년부터 상황이 완전히 바뀐다. 역사침탈 프로젝트 동북공정이 알려지면서 온 국민이 들고일어나 이른바 한ㆍ중 역사전쟁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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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옷 한복 바로알리기’ 패션쇼사단법인 한국시니어스타협회(이사장 김선)는 ‘한복은 우리 민족의 혼입니다’라는 주제로 반만년 아름다운 우리 옷의 복식사를 알리는 ‘우리옷 한복 바로알리기’ 패션쇼를 부산 벡스코 누리마루 평화마당에서 10월 3일 단기 4354년 개천절에 맞춰 한복 선언문 낭독과 함께 개최한다. 이번 패션쇼를 기획한 장기봉 감독은 "중국 동북공정에 따른 역사 왜곡 가운데 하나로 우리 전통 옷 한복까지 그들 문화에서 시작됐다는 그릇된 역사의식에 대항하고자 우리 민족 고유의 한복에 대한 아름다운 변천사를 고조선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보여줄 것”이라고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올 5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 콜린스 영어 사전에 ‘한복(Hanbok)’이라는 단어가 새로 추가된 것도 행사 개최 계기가 됐다.이날 행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기원 태권도 시범 공연을 시작으로, 역사적인 우리 옷 복식사 패션쇼가 열린다. 이번 행사에서 의상을 맡은 김현숙 명장명인(김현숙 우리옷문화연구원)은 국내 손꼽히는 한복 복식사 전문가로, 우리 아름다운 전통 의상 한복이 더는 변질되지 않도록 바른 한복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설명했다.또 이번 전통 패션쇼의 가치를 높히고자 한복 의상에 따른 두식 변천사에는 고전 머리의 장인이자 한국방송 고전머리전문가협회 오색단장 대표 임수빈 교수가 함께한다.이번 행사를 개최한 한국시니어스타협회 김선 이사장은 교사 출신 모델 1호로, 행사에 앞서 우리 미래 세대에게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과 역사의식을 고취한다는 보람으로 임하게 됐다는 각오를 나타냈다.한편 이번 행사에는 행사 의미에 맞게 여러 인사가 참여한다. 국기원 이동섭 원장(전 국회의원), 사단법인 바르게살기운동본부 정용식 사무총장, 이영만 한국시니어스타협회 회장·태용성 수석부회장 등 문화 예술계 저명인사들이 모델로 런웨이에 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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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이 걸어 온 길 32무속음악 기층성 강조, 양종승 박사(下) ‘국악신문’ 100호 기념 기획물 <국악시론>의 첫 필자인 양종승 박사는 ‘국악은 다양한 장르를 아울러야 한다’는 제하로 신앙과 국악의 관계를 제시했다.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춤은 장단 속에서 추어지고 가락의 음률이 발림 속에서 맺어지는 국악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그 속에는 상징적 행위를 동반한 놀이성과 의례성이 대단히 강조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우리 삶 속의 신앙 그 자체였다. 신앙을 바탕으로 짜여진 소리와 행위는 떨어짐이 없고 놀이와 의례가 합일됨에, 결국 예술적으로 극대화 된 국악으로 꽃 피었던 그 것의 모태를 아우러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신앙을 바탕으로 짜여진 소리’는 ‘예술적으로 극대화 된 국악’이라는 논지이다. 전통음악의 기층에 무속음악이 자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기에 애둘러 표현한 것이다. 기실은 무속음악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양 박사는 무속학의 권위자로서 무속 연행에서 음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것이 우리 전통음악의 기층을 이루었음을 제시한 것이다. 양박사의 무속에 대한 인식은 남다른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영적인(spritual) 민족'이라고 단언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위의 칼럼을 쓰던 시기의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인데, 이어서 "무속신앙은 한국의 역사ㆍ문화의 근저에 자리한 중요한 가치입니다. 무속 연구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업이죠.”라고 한 말도 같은 취지이다. 즉, 무속의 세계관이 한국인의 정체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한 것으로 양 박사의 무속론은 한국학 전반을 아우른 결과인 것이다. 1999년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으로 재직하던 시기 「한국의 무속:서울.황해도편」 같은 조사 보고서류의 저술은 당연하다. 전공자답게 무당 개인에 따라 각기 다르게 전승되고 있는 무의식(巫儀式) 형태를 조사 기록하고 고찰한 것이다. 이런 결과로 "무교는 현실세계에서의 행복을 위한 종교이다. 기독교나 불교는 현세에서 교리를 믿고 따라야 죽어서도 좋은 세상으로 간다라고 하지만, 무교는 세상을 떠나는 그 누구에게도 행복을 빌어준다."라는 비교론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무속신앙에는 아이를 점지해 주는 신, 풍년을 빌어주는 신, 재물을 안겨주는 신 같은 여러 신들이 공존하여 자연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고 하며 "서로간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 신들은 싸우지 않는다. 평화를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뿐인가. 무속의 영(靈)발로 직감이나 예감을 따르는 신바람을 우리의 기질이라고 하는 ‘통밥론’ 까지 설파한다. ‘무속연희공연’이란 신조어를 창안했다. ‘서천꽃밭에 핀 살잽이 꽃’의 서사로 지화(紙花)의 세계를 펼치기도 했다. 제정일치 사회였던 고조선 시대부터 존엄과 보호의 의미로 산(山) 모양의 모자를 썼다는 ‘고깔론’도 펼첬다. 무속인들의 애환을 함께하는 것으로 작두까지 타는 진정성, 이 때문에 무속인들로 부터 ‘존경하는 후원자'로, 국제적인 학자들로부터 찬사까지 받는다. 유물과 이를 담은 건물이 이념과 실제에서 일치하는 진정한 박물관, 샤머니즘박물관이다. 그래서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들의 아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2016년 5월 25일 세긴 양승종 관장의 인사말은 더 없이 소박하여 경건한 신앙고백으로 읽힌다. 온전한 무속인, 완전한 샤먼학자 양종승을 만나는 것이다. "민족 신앙에 몰두하여 전승현장을 찾아 나선 지 수 많은 星霜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이곳저곳에서 사라져 가고 짓밟혔던 神物들을 가지런히 보듬고 쓰다듬다 보니 어엿한 유물로 되살아나 큰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샤머니즘박물관으로 보람판을 걸었습니다. 우리 고유의 신앙사로 면면히 이어져 온 한민족 사상과 철학, 기술과 예술, 감성과 감각을 읽어내는 민족의 유무형유물로 승화되어 더없는 기쁨을 줄 뿐입니다. 부디 방문하시어 민족 신당으로 자리매김되어진 금성당 터전에 神氣서린 샤먼유물이 살아 숨쉬는 담론으로 꽃피어 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가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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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이 걸어 온 길 20편집국장 우실하 기업이든 언론사든 운영체계의 확립은 내적 조직의 강화와 외적 사세의 확장으로 시작된다. 모두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 수립 결과로, 전자는 적정 능력에 따른 직제의 수립이고, 후자는 모기업을 지원하는 자회사의 운영이다. 「국악신문」의 운영체계 수립은 창간 2주년을 전후한 제40호 발간 이후로부터다. 편집국 진용이 갖춰지고 전국에 지사를 설립한 시기가 바로 이 때부터이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 직제의 수립은 기자는 물론 전문가에 의한 고문과 자문위원 진용을 갖춘 것은 객관적인 위상을 확립한 것임을 알린 결과이다. 외적으로는 배달 업무와 지역 뉴스 확충을 위한 전국 주요 지역의 지사 설립이다. 전국 11개 지사인데, 춘천 평택 여천 마산 진주 남원 대전 김제 정읍 군산 인천지사이다. 모두 국악 거점 지역으로 지역소식 확보와 신문 배달업무에 긴요한 지역 안배인 것이다. 또한 부대사업으로 운영 자금 확보를 위한 ‘공연기회 대행’ 사업의 개설이 있었다. 대관업무, 홍보, 공연표 예매, 프로그램 전단 제작 등을 대행하는 업무이다. 제51호 판권을 보면 "고문 정범태, 발행 겸 편집인 김호구, 편집 이자균 김정아, 사진, 임준섭 정수미, 편집 자문위원 변영호 채치성 오용록 이명준 우실하”로 확인된다. 이 체제는 당시로서는 어느 주간 신문사 편집진 못지않은 진용이다. 특히 고문 정범태선생은 국악예술인 사진작가로서 당대 최고의 위치였고, 자문위원들 역시 당시 현장과 이론을 갖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정리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다만 이번 회에서는 국악신문 편집국장을 역임한 우실하 위원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초기 편집위원으로 활동한 우실하 위원은 이후 편집국장과 필자로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과정이었다. 현재는 한국항공대 교수로 ‘3수 분화의 세계관’(2012년),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2007년), ‘전통문화의 구성원리’(1998년), ‘전통음악의구조와원리: 삼태극의 춤’(2004년)을 발간한 전통문화 학자이다. 2000년대 초에는 "요하(遼河)문명이 발견된 이후 중국은 자국 문명의 기원을 완전히 새로 쓰는 작업을 착실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의도대로 상고사 재편이 마무리되면 고조선 이후 한국사는 자동적으로 중국사의 한 갈래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라는 중국의 동북공정 상황을 전해 충격을 주기도 한 요하문명과 홍산문화 전문가 이다. 현재 동북아문화 전공교수로 또한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글, 우주를 품다!’ 전시회 개최(본보 2월 3일자 참조) 중인 한글창제 원리를 풀이한 회화 작품으로 기법과 주제에서 화제를 낳고 있기도 하다. 우실하 위원은 본보 40호~60호 전후 편집국장 재직시 지면을 개혁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기존의 현상적인 기사 중심에서 대부분을 외부 전문 필자의 심층기획 기사로 확충하여 질을 향상시켰다. 지면 구성에서도 사진과 표제 포인트를 대형화 하여 가독성을 높였다. 또한 자신이 직접 집필을 맡아 국악 전문지로서의 정체성 강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중 연재물 두 편은 많은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는데, 본보 제49호 1997년 2월 28일자 ‘음악문화 다시 읽기’라는 코너 '우실하의 우리문화를 읽는 정당한 인식틀'이다. ‘다시 읽기’와 ‘정당한 인식틀’이란 키워드에서 짐작되듯이 전통음악 이해에 개혁을 촉구한 글이다. 2수 분화인 음양론과 3수 분화인 삼재론이 4,5세기 완전한 이론으로 자리 잡는데, 이는 2천년 전부터 자리 잡아 온 우리(東夷族) 사유체계이고, 이로부터 중국과 일본과 다른 우리 음악 특징이 발현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 특징이 농현의 발달, 3분박 중심, 정간보 3등분 율명 기입, 시조 고악보 기입 특징 등이라고 했다. 이는 분명히 3국시대 이후 문헌 중심의 음악사 체계와는 다른 ‘인식틀’을 넘어선 이론이다. 앞의 연재에 이은 것이 ‘음양 오행 삼재론으로 본 풍물’이다. 강릉풍물, 전라우도 이리풍물, 경북 금륭농악 등의 농기와 복색과 집번 등을 이론적으로 풀이하였다. 이 연재물은 2004년 저서 ‘전통음악의구조와 원리: 삼태극의 춤’에 수용되기도 했다. 이후 우리 전통문화의 근본 이론을 제시하는 다양한 집필이 이루어졌다. 이런 내용은 당연히 국악신문의 방향성, 즉 ‘민속음악 중심의 국악 위상 정립’이라는 창간 이념에 크게 기여하였다. 우실하 위원은 국악신문 26년사에 기억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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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문화고국 회복」을 기대한다. - 해상도시 지구촌의 당진고을을 보며 -본지 고문 하 정효 조국(祖國)과 국가(國家)가 상존하는 우리에게 상해임정 100년의 역사를 찾는 것도 중하지만, 단군성조 이전 오천 년, 이후 오천 년의 문화고국(文化古國)을 찾는 것은 더 소중하다. 한국의 국악에는 ‘고국’들이 많다. 현재의 국악은 대개 근세조선과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기에 발생한 것인데 반해, 거슬러 올라 고조선을 비롯한 기자조선 또는 전삼국 후삼국에 걸친 옛 나라들에는 국악의 사료가 거의 없는 지경이다. 시간여행을 하여 고조선과 마한 진한 변한 땅을 가 보자. 그 시절의 군왕과 백성, 선조와 후손들에게는 희로애락이 없었을까. 또 동래설(東來說)에 시달리고 있는 기자조선의 홍범구주(洪範九疇)나 팔조법금(八條法禁)은 국악의 가사가 될 수 없을까. 고대 페르시아의 사산왕조에 못지않았던 발해문화에는 국악의 소재가 없을까. 악랄한 “동북공정”으로 소실된 ‘대조영의 황금문화’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시아의 종조(宗祖)였던 단군왕검! 이 시절 “단군의 땅”은 아시아와 태평양을 아울렀는데, 그때는 춤과 노래, 악기와 풍물이 없었을까. 실오라기만한 몇 줄의 근거라도 찾아 국악의 유구역사와 전통을 이어보면 아니 될까. 정부의 정책 인력 예산이 따른다면 가능하다. 국악은 수많은 고국을 가졌다. 궁예의 태봉국, 이사부 시절 우산국, 김수로왕의 6대 가야, 그리고 탐라국과 제1대에서 제18대까지 옛 선조가 통치했던 49.5Km거리의 대마도 등 국악의 고국이 아닌 곳이 없다. 전쟁의 무화(武化)와 평화의 문화(文化)는 병진하는 법, 이들 무예와 문예의 사이에 어찌 그 시절의 무가기풍(舞歌器風)이 없었겠는가. 이들은 국악의 고국이다. 우리들 언제 ‘고국의 국악’을 접할 수 있을까. 생사의 기로와 흥망성쇠를 이겨왔던 옛 선조의 소리 몸짓 울림 외침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경복궁 교태전 뒤에는 인조(人造)로 만든 아미산(峨眉山)이 있다. 그런데 실물 아미산의 소재지는 당진이다. 일찍이 신라의 삼국통일에 훈수를 들었던 나당연합군 시절, 불야성을 이루었던 지구촌의 중심지 당진고을은 바다의 물기둥이 지어낸 지구촌의 궁전이다. 당진은 바닷물이 내륙을 드나들면서 9강10천(九江十川)을 이루고 있는 “해상도시”이다. 여기에 “중전마마의 아미산”이 있고, 성자영걸의 “다불산(多佛山)”이 있다. 북으로 오산, 남으로 예산, 동으로 아산, 서쪽으로 서산이라는 4대도시가 산(山)이 되어 병풍처럼 둘러 있고, 567m의 가야 산맥이 성화봉의 기둥처럼 당진을 떠받치고 있다. 가히 “지구촌의 당진”이다. 이곳에 임란의 이충무공 못지않은 고려의 한 장군이 계신다. 이 장군은 왕건이 신의주에서 원산까지 천리장성을 쌓고 안주하는 것이 안타까워, ‘단군의 땅’을 찾겠다는 웅지가 물거품이 되자 고향으로 낙향, 득병 사경에 이른다. 그가 복지겸이시다. 그에게는 백일 정성, 현몽대로 “아미산의 두견화로 술을 빚어” 아버지를 살려 낸 ‘영랑’이라는 효녀가 있었다. 영랑이 심은 은행나무 두 그루는 1,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당진시 면천면의 상록수가 되어 살아있다. 안타깝게도 노래는 없다. 그뿐이 아니다. 일제 치하 동아일보 연재소설 상록수의 저자 항일지사 심훈 선생도 마찬가지이다. 노래 한마디가 없는 것이 공통적이다. 누가 국악의 고국을 찾을 것인가. 임정100년을 찾는 이 마당에, 국악 만 년의 역사를 현창하는 것은 어떨까. 세계문화의 뿌리가 고국강산에 넘치는데도, 조국의 역사, 고국의 문화를 어떻게 찾을까. 오늘날 우주시대 세계시대를 말하지만, 고조선 저쪽 옛 선조는 세기를 앞질러 오늘의 지구촌이 가야 할 홍익세계를 말하지 않았던가. 이 정부에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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